상법개정안 통과: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명문화, 한국 자본시장에 미칠 영향은?
2025년 3월 13일,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명문화하고 상장회사의 전자주주총회 개최를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첫걸음이라는 평가와 기업 경영에 소송 남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는 가운데, 이번 개정안은 어떤 의미를 가지며 기업과 투자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대주주와 소액주주 간의 이해관계 충돌을 해결하기 위한 법적 장치로서 상법 개정의 핵심 내용과 앞으로의 전망을 심층 분석해보겠습니다.
상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와 전자주주총회
국회는 3월 13일 본회의에서 재석의원 279명 가운데 찬성 184명, 반대 91명, 기권 4명으로 상법 개정안을 가결했습니다. 이번 개정안은 민주당이 당론 처리를 약속한 법안으로,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에 반대하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도록 건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
이사가 직무를 수행할 때 총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도록 규정
상장회사가 전자주주총회를 소집 시 기존 주주총회와 병행 개최하도록 의무화
다만, 상법 개정안에서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와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 더 논쟁적인 요소들은 이번 가결된 개정안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상법 개정을 둘러싼 찬반 논쟁: 소송 남발 우려 vs 장기투자자 유입 기대
이번 상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찬성 측과 반대 측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습니다.
찬성 측 주장
찬성토론에 나선 이소영 민주당 의원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는 선진 자본시장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져왔다"며 "이번 개정안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주식회사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원칙을 선언하는 내용"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의원은 또한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주주들의 소송이 남발될 거라는 우려에 대해 "과장"이라며 "증권 집단소송이 도입될 때도 소송 남발을 우려했으나 지난 20년간 실제 제기된 소송은 12건에 불과하다"고 반박했습니다. 투기자본 공격 우려에 대해서도 "투기자본의 자양분은 상법 개정이 아니라 저평가된 주가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돼 장기 투자자들이 들어온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 행사 가능성과 관련해 "직을 걸고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그는 "주주가치 제고와 관련한 논의를 원점으로 돌리는 형태의 의사결정은 저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며 "작년 12월 이후 현 경제팀은 공매도 재개와 주주가치 제고에 대해 일관된 의지를 해외 투자자 등에게 밝혀왔다"고 강조했습니다.
반대 측 주장
반대토론에 나선 최은석 국민의힘 의원은 "이번 개정안은 기업 경영 현실을 전혀 모르는 초보자들이 만든 위험한 탁상공론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각 주주들은 서로 다른 이해 관계를 갖고 있다.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며 모든 주주를 만족시키는 기업 혁신은 애당초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재계는 이사의 충실 의무가 과도하게 확장될 경우 이사에 대한 소송이 남발될 거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특히 "경영의사결정에 따른 불이익을 주장하는 주주들이 소송을 남발할 가능성이 커지고 해외투기자본의 공격 우려가 커져 기업들이 온전히 경영에 전념하기가 어렵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법리적 쟁점: 상법 개정의 적절성에 대한 전문가 견해
상법 개정을 둘러싼 법리적 쟁점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최준선 명예교수는 "이 충실의무 규정은 어디까지나 이사와 회사 간의 이해가 충돌할 국면에 적용되는 규정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라고 지적하며, 지배주주와 소수주주 간 충돌 문제를 왜 이해충돌의 당사자도 아닌 이사에게 뒤집어씌우냐는 질문을 제기했습니다.
또한 법학계에서는 이사가 계약 관계도 없는 주주에 대해 의무를 부담한다는 것이 법 이론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상법 개정보다는 자본시장법을 통한 접근이 더 적절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국민 여론: 찬성 40.6% vs 반대 34.7%
한양경제와 조원씨앤아이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해 개정해야 한다"는 찬성 의견이 40.6%, "기업의 자율성과 경영 안정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으므로 개정해서는 안 된다"는 반대 의견이 34.7%로 나타났습니다.
연령대별로는 젊은 층일수록 찬성 의견이 높고, 고령층일수록 반대 의견이 높았습니다. 18~29세에서는 찬성 46.3%, 반대 34.0%로 찬성 비율이 크게 우세했으며, 70세 이상 고령층에서는 반대가 41.8%, 찬성이 20.7%로 반대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아 연령대 간 여론 차이가 두드러졌습니다.
상법 개정안의 향후 전망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긴 했으나 국민의힘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부총리에게 거부권(재의요구권)을 요청할 방침이어서 도입 여부는 최 대행의 결정에 달려있습니다. 최 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법안을 공포하면 개정안은 1년 후 시행됩니다.
전문가들은 이사충실의무가 배임죄로 확대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습니다. 정준혁 서울대 교수는 "업무상 배임죄 기소 지침 제정을 통해 과도한 형사화를 방지해야 한다"고 제언했으며, 이에 민주당 측은 형사상 책임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결론: 한국 자본시장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전환점
이번 상법 개정안 통과는 한국 자본시장의 선진화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수십 년간 대주주 중심의 경영 관행으로 인해 소액주주들의 이익이 침해되어 온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진전입니다.
그러나 상법 개정이 기업 경영을 위축시키거나 소송 남발로 이어지지 않도록 균형 잡힌 후속 조치와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합니다. 특히 배임죄 적용과 관련된 우려를 해소하고, 이사들이 경영 판단을 내릴 때 참고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